책소개
책의 서두 부분은 우리가 바이오 활성가스(biologically active gases)라고 이름 붙인 일산화질소, 일산화탄소, 그리고 황화수소에 대해 독성 가스가 갖는 어두운 측면을 기술하면서 시작할 것이다. 사실 가스를 만들어 내는 모든 기술은 세균에서 비롯되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세균은 생화학적 변화무쌍함을 두고서라면, 인간을 포함한 진핵 세포군을 압도하고 있다. 세균은 어떠한 생화학적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을까?
거대한 몸집을 가진 생명체에서 이러한 가스들은 대부분 효소의 작용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골치 아프기 짝이 없는, 오페론으로 유명한 자코브와 모노의 표현을 빌리면 ‘대장균에서 옳은 것은 코끼리에서도 옳다.’ 대위법적인 오류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세균에서도 가스는 효소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가스의 양과 활동 범주를 생각할 때는, 일반적인 효소의 행동 수칙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첫째는 효소가 재료로 쓸 기질(substrate)과 조미료 같은 조효소(cofactor)가 충분히 존재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둘째, 효소라는 단백질의 조절 혹은 구조 변화를 동반할 수도 있는 단백질 구성 아미노산의 수식(modification)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셋째는 효소가 얼마만큼 만들어지고, 세포 혹은 조직의 어디쯤에서 일을 수행하는가, 마지막으로는 어떤 순간에 가스가 만들어져야 하는가 하는 측면,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한편, 일산화탄소는 헴(heme)이라는 매우 복잡한 화합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헴은 여덟 단계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생명체 내부에서 바이오 활성가스를 만들어 내는 효소들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들은 헴을 가지고 있거나, 최소한 헴과 결합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산화질소를 만들어 내는 효소인 일산화질소 합성효소는 최소한 세 가지 종류가 알려져 있는데, 효소가 존재하는 장소 혹은 효소의 발현 양상과 관련이 있다. 혈관에서 주로 만들어지고 혈관 확장을 매개하는 경우 혈관내피세포(endothelial)를 따서 혈관성 일산화질소 생성효소(NOS)라고 한다. 신경계에 주로 분포하고 거기서 신경전달물질로 작동하는 경우는 신경계(neuronal) NOS라고 한다. 평소에는 잠잠하게 있다가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에만 득달같이 나타나서 일을 하는 경우는 유도성(inducible) NOS라고 한다.
헴의 합성과 헤모글로빈의 진화적 역사를 좀 살펴보면서, 한편으로는 헴 함유 단백질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와 함께 헤모글로빈이 운반하는 산소의 세계로 서서히 들어갈 것이다. 바이오 활성가스의 보편적 기능은, 헤모글로빈의 철 원자에 결합할 수 있는, 이들의 화학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생명체에 치명적인 양보다 훨씬 적지만,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양보다 조금 많은 정도의 가스는 생명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까?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살펴보고 연구하고자 하는 관심 분야다.
헴은 화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테트라피롤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질소를 1개 포함하여 오원환을 가진 구조를 피롤이라고 한다. 4개의 피롤이 네 귀퉁이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각각의 중간에 탄소 1개씩을 끼고,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네 잎 클로버 같은 형태가 테트라피롤 구조다. 그 중심에 금속 원자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러한 안정된 배치를 바탕으로 헴은, 전자를 주고받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헴이 펩티드와 연합을 하게 되면, 산화 환원 반응의 속도가 100만 배 이상 증폭된다.
펩티드에 편입되어 있는, 이러한 금속 다발(metal cluster)의 생물학적 의미에 대해서도 조금 언급하려고 한다. 산소를 만드는 광합성의 형태도 금속 다발에 빚을 지고 있다. 이는 망간과 칼슘이 산소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이 금속 다발은, 산소 발생 복합체(oxygen evolving complex)라고 하는, 머리가 빙빙 도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2분자의 물에서 양성자 4개를 빼내고, 전자 4개를 훔쳐 내서, 이산화탄소에 최종적으로 전달되게 하는 것, 이것이 간단하게 기술한 광합성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차분하게 다시 바이오 활성가스로 돌아와서 실험실 벤치에서 임상으로 적용 가능한 부분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현재 진행형인 임상 시도를 예로 들어 보겠다. 바이오 활성가스가 가사 동면, 즉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오래 자다가 뒤탈 없이 일어나 거침없이 뒤뜰을 활보하는 가사 상태(suspended animation)도 임상과 관련하여 다루어 볼 작정이다. 헴을 먹고사는 기생충, 원생생물 혹은 세균과 숙주인 인간이 지난한 싸움을 벌여 온 역사도 역시 의학과 약물 치료의 관점에서 약간 언급할 것이다.
200자평
우리 몸속을 구성하는 100조에 이르는 세포의 상당 부분이 가스를 만들거나, 그 가스에 반응해 무엇인가 일을 한다. 세포들끼리 신호를 전달할 때 긴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혈관을 확장하는 기능을 맡기도 한다. 이 책은 우리 몸에서 효소의 도움을 빌려 만들어지는 가스 분자, 즉 ‘바이오 활성가스’에 관한 기록이다. 김홍표 교수가 생화학, 면역학, 과학사, 진화의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우리 몸속 가스들, ‘산소와 그 경쟁자들’에 대해 알려진 모든 사실을 엮어 냈다. 전공자들에게 새로운 관점과 통찰을 안겨 줄 책이다.
지은이
김홍표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약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이다. 국립보건원 박사후 연구원과 인하대 의과대학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피츠버그 의과 대학, 하버드 의과 대학에서 연구했다. 천연물 화학, 헴 생물학, 바이오 활성가스 생물학, 자기 소화, 면역학과 관련한 여러 편의 논문을 썼으며, 국제 저널에 60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 분야와 관심 분야는 기초 생물학과 진화생물학, 진화의학이다. ≪산소와 그 경쟁자들≫(지식을만드는지식, 2013)의 저자이며 ≪제2의 뇌≫(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지식을만드는지식, 2014)을 우리말로 옮겼다.
차례
들어가며
1. 바이오 활성가스란?
올라비우스
일산화탄소
지금까지 알려진 일산화탄소의 얼굴
일산화탄소의 응용
고기는 붉다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일산화탄소의 역할
황화수소의 발견: 파리의 하수구에서 생리학의 신호전달물질로
2. 왜 가스인가
가스의 화학적 성질
우리 몸이 가스를 만든다고?
니트로글리세린
일산화질소: 혈관을 확장하다
단백질을 수식하는 100가지 방법
신호 전달자로서 가스의 호흡 조절
신경계를 통한 일산화질소의 호흡 조절
일산화탄소
장거리 통신: 면역
황화수소
요소 회로: 질소와 산소 순환의 역사
요소는 고세균의 생명수
광합성을 하는 척추동물
3. 포르피린에서 헴으로
우로포르피린
식물속 색소
질소를 포함하지 않은 색소
질소 함유 색소
헴은 크렙스 회로에서
오래된 분자, 헴
헴은 무슨 일을 할까?
모든 테트라피롤은 우로포르피리노겐 III로부터
출발 물질이 동물과 다른 식물의 헴 합성
두 얼굴의 유글레나
기생충 딜레마
헤모조인과 조인(join)하다
헴 산화효소
첨복포자충의 헴 합성
헴이 필요없는 첨복포자충?
헴 대사 조절 포인트
첨복엽록체: 사라진 녹색의 저편
헴 합성의 조절: 다시 미토콘드리아로
헴 합성 조절과 해당 작용
헴의 오랜 동반자: ATP 결합 카세트
용감한 과학자들
4. 바이오 활성가스와 대사
세포 내 대사 조절 물질: 바이오 활성가스
황 대사와 일산화탄소
황 전환 경로
담즙산의 기원
아미노산의 진화
아미노산의 전구체와 생합성
바이오 활성가스와 아미노산 대사
아데닌 관련 생체 물질
NAD, NADP
RNA 세계에서 온 메티오닌: SAM
일산화탄소와 황화수소: 다시 산소에게로
미토콘드리아 황-퀴논 산화환원효소
뇌 속 에너지 생산과 가스 분자들
구획화는 언제나 농도의 문제
진핵 세포에서 대사의 구획화
확산 제한형 구획화
유전자의 유래와 단백질 구획화
퓨린 신호: 세포의 봉화 체계
위험 신호에 대한 세포 반응
본색 드러내기
세포 외부의 덫
5. 보편적 대사 조절
노화의 암호를 풀다?
레스베라트롤
인슐린 저항성과 비만
비만: 면역과 물질대사 과정의 위험한 불장난
진화에 대항한 현대인의 식탁
인슐린 저항성: 에너지의 재분배
인슐린 저항성은 필요했는가?
지방의 다양성
‘신석기 시대’의 현대화가 당뇨병의 시작?
과당 대사와 포도당: 가장 안정한 것이 가장 안전한 것
과당: 죽음의 단맛
락트산의 숨겨진 얼굴
기생 생명 이야기
외인성 수명연장인자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의 식민지화
식물은 데본기에 지구에서 광범위한 식민지를 개척했다
외인성 수명연장인자 가설
이차 대사 산물과 종 간 신호 전달
다가 페놀: 항산화제 혹은 신호전달물질?
레스베라트롤과 서트 1의 활성
서트 1의 효소 활성을 조절하는 NAD/NADH 비율
NAD+의 순환과 회수 경로: 식이 제한과 수명 연장 효과
서트 1 효소의 탈아세틸 반응의 독특한 점
니코틴아미드 리보사이드: 서트 1을 활성화하는 니코틴산 대체제
노화와 관련된 서트 1의 생리학
관망하기
리보사이드
6. 산소
산소와 함께 살아가기: 나무는 어떻게 꼿꼿하게 서서 수백 년을 살 수 있을까?
전자 주고받기
빅 식스
윌슨 주기와 탄소의 매장
질소에게 영광을
질소고정은 왜?
공생의 시작
질소 순환과 산소
산소와 더불어 살아가기
7. 산소와 함께 살아가기
생명은 쉴 곳을 찾는 전자일 뿐이다
미토콘드리아에서 전자는 어떻게 흐르는가? 에너지의 흐름인가?
산화적 인산화 억제 물질
활성산소가 만들어지는 곳
광합성의 진화는 자유 라디칼 때문이다
활성산소 적게 만들기: 퍼록시좀의 진화
퓨린계 대사체는 막을 통과하지 못한다
8. 헤모글로빈의 진화
원시 지구의 산소 운반자?
우리 모두를 잇는 헤모글로빈
헤모글로빈이 식물에도?
헤모글로빈과 동맥경화
겸상 적혈구의 헤모글로빈
원시 헴 단백질에서 헤모글로빈으로
헤모글로빈 아래 우리는 하나
헤모글로빈 없이도 살 수 있다?
적혈구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없다
적혈구는 소기관을 스스로 먹는다
헴의 미토콘드리아 탈출
고양이 백혈병바이러스 C 수용체
미토콘드리아 융합과 분리
미토콘드리아 품질 관리
굶으며 살기: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리소좀은 진핵 세포에 특유한 것인가?
세균과 사이좋게 함께 사는 아메바
리소좀 막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 당화 글리코칼릭스
리소좀의 진화
선택적 암치료
9. 헴 함유 단백질
헴의 역할
미오글로빈 헤모글로빈의 진화
원시 헤모글로빈
보존된 아미노산
헴 집어넣기
적혈구에서 GAPDH
비타민 B12: 마틴 워런 박사
효모 제약 공장
신경세포의 헴 조절: 아폽토신과 헴 합성 억제
밤낮 없이 먹는 쥐가 살찐다
잠을 자는 것은 먹지 않는 것이다
시토크롬 b5와 스테로이드 대사
섭식 조절의 새로운 강자: 우로구아닐린
세포계의 태양천골지체: 암세포 대사
단백질 분해와 헴
N-말단 규칙: 세포 내 헴의 산화 상태를 감지한다
N-말단 규칙, 프로테아좀
엉킨 실타래 풀기
헴과 마이크로 RNA
마이크로 RNA에 기초한 진화 계통도
10. 금속을 필요로 하는 생체 물질, 금속 다발
단백질과 금속
단백질에 금속 끼워 넣기
금속과 단백질 접기
금속과 유전자 담금질: RNA 절단접합
텔로미어: 세포 시계
구아닌사중체 억제제
RNA 구아닌사중체
풀어야 할 숙제들
코롤과 구아닌사중체: 항암제
망간 금속 다발 복합체
망간-칼슘-산소 다발 복합체
11. 다시 바이오 활성가스를 돌아보니
복잡성의 진화, 태반 그리고 일산화탄소 50ppm
피는 물보다 진하다
태반의 진화: 인간 유전체와 바이러스
세포 융합: 진화의 흔적
일산화탄소가 자연 유산을 방지한다?
볼복스, 클라미도모나스, 체세포와 생식세포 분화
세포 유형의 진화와 동물
벌레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세포 유형의 진화
혈액세포와 자연 면역
12. 실험실에서 병상으로: 가스 테라피
소리 없는 살인자에서 치료 전도사로 거듭나다
비타민 B12, 헴 계열 필수 영양소
근적외선으로 치료하기
13. 마치며
완보하는 삶
벌레에게 배운다
산소와 닮은 분자
나가면서
지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우리가 아직 모르는 가스 물질을 지금도 누군가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 가스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그 가스가 우리 몸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들 가스가 유기체 내부 물질대사의 산물임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앞에서 우리는 이 세 종류의 가스가 혈관을 확장하거나 신경전달물질로 사용된다는 기능적인 측면을 살펴보았다. 생물학적으로 활성이 있는 가스라는 의미를 담아, 나는 이들 분자들을 바이오 활성가스라고 부를 것이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들 가스는 일단 헴과 친화력이 있다. 일산화질소도 그렇고 황화수소도 그렇다. 또 이들 가스가 생체의 내부에서 만들어질 때 관여하는 효소들 대부분이 헴 결합 단백질이다. 헴이 없다면 이들 효소는 활성이 적거나 사라진다는 의미다. 헴 산화효소는 헴을 분해하여 헴의 항상성을 조절하는 단백질이다. 따라서 본성상 과도한 헴 산화효소의 활성은 세포 내부에 있는 헴의 양을 고갈시킨다. 이때는 다시 헴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가동되어야 할 것이고, 이 두 과정은 물고 물리면서 서로 되먹임 작용을 하고 있다.